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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목간학회 공동 국제학술대회
 
정선화
 
551
 
2019-01-29 14:56:30
 

“7세기 일본은 백제·신라 본떠”…‘목간 연구’ 일본 학자들 인정했다

 

한·일 목간학회 고대사 워크숍

한반도 영향력 무시하던 입장 뒤집고
‘목간 유물’ 토대 파격적 결론 내려
율령·행정시스템 등 문자문화 흡사
국내 학계 “역사학 교류 일대 사건”

지난 19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열린 한일 목간학회 공동주최 워크숍 현장. 일본쪽 연구자인 바바 하지메 나라문화재연구소 사료연구실장이 한-일 목간의 비교연구 성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열린 한일 목간학회 공동주최 워크숍 현장. 일본쪽 연구자인 바바 하지메 나라문화재연구소 사료연구실장이 한-일 목간의 비교연구 성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7세기 일본은 신라·백제의 법과 행정체계를 본떠 고대국가의 틀을 꾸렸다.’ 

 

‘6~7세기 일본에서 국가문서 업무를 처음 시작한 이들은 오사카에 온 한반도 도래인들이다.’

 

‘일본의 국가시스템 형성에 미친 한반도 문자문화의 강력한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국내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지난 19일 낮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한국과 일본의 목간학회 공동주최로 열린 한일 고대사 워크숍에서 일본의 주요 역사학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일본 각지에서 연구자들이 몰려와 200여명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된 이날 워크숍에서는 현지 학자들의 파격적인 발표가 잇따랐다. 한반도 문자문화가 일본 고대국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하고, 이런 역사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내용들이었다.

 

알려진 대로, 그동안 일본 역사학계는 고대 한반도 문화가 자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했다. 대개 한·당나라 등의 중국 문화를 직수입했다거나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에 들어왔다는 설만 강조해왔다. 이런 시각 탓에 삼국시대 문화 전파의 의미를 애써 무시한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그런데, 워크숍에서는 기존 설이 쑥 들어가고, 주류 학자들은 확연히 바뀐 인식을 드러냈다.

 

그들의 생각이 바뀐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목간 유물이다. 목간은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 유적에서 물품 출납기록이나 관공서 행정기록물로 종종 출토되는 나무 쪽문서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줄줄이 출토되면서 각광받은 6~8세기 신라, 백제시대 목간 300~400여점과 지난 100년간 일본 각지에서 30만점 넘게 출토된 비슷한 시기 고대 목간을 일본 학자들이 최근 비교 분석한 결과, 현지 학계의 인식이 급속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워크숍을 준비한 이성시 한국목간협회 회장(와세다대 교수)은 한국 목간을 제대로 살펴봐야 행정문서로 쓰인 일본 고대 목간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일본 고대 국가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2009년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6~7세기 백제시대 목간과 목제품. 출토목간들의 일부 호적 출납 기록 등은 고대 일본의 목간 기록과 공통되는 요소들이 많아 주목을 받았다.
2009년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6~7세기 백제시대 목간과 목제품. 출토목간들의 일부 호적 출납 기록 등은 고대 일본의 목간 기록과 공통되는 요소들이 많아 주목을 받았다.
‘한국목간과 일본목간의 대화-한국목간연구 20년’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워크숍은 한국의 목간 연구 성과를 일본 학계와 나누고, 일본의 한국 목간 연구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일본 7세기 목간과 한국의 고대 목간을 비교연구한 이치 히로키 오사카대 교수와 701년 일본이 율령(법률)을 반포한 고대국가로 전환할 당시 한반도 목간이 미친 영향을 고찰한 가네가에 히로유키 가쿠슈인대 교수의 발표였다.

 

이치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성산산성, 경주 월성 등에서 출토된 6~7세기 목간들 가운데서, 물품 꼬리표 구실을 한 하찰 목간의 표기 형식과, ‘에게 아뢴다…’는 ‘前白…’으로 시작되는 문구를 담은 관공서의 상부 보고용 목간과 같은 양식이 일본의 7세기 목간에서 무수히 확인된다고 짚었다. 아울러 일본 현지 목간 발굴 판독 결과 나니와(오사카)에 정착한 백제계 도래인에 의해 일본 문서행정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점도 분명해져 일본의 고대 목간에서 보이는 국가 행정시스템은 신라·백제 목간 형식이 건너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7세기 일본 목간 등에 보이는 호적과 관리들의 보고문 양식이 백제·신라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 근거였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대량출토된 신라의 목간 문서들. 당시 지방에서 물자의 이동·출납·책임자 등에 대한 생활사 정보들을 담고있다. 2007년 12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76점의 목간유물 가운데 일부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대량출토된 신라의 목간 문서들. 당시 지방에서 물자의 이동·출납·책임자 등에 대한 생활사 정보들을 담고있다. 2007년 12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76점의 목간유물 가운데 일부다.
일본 강단역사학계의 주요 학자중 하나인 가네가에 교수는 7세기 한반도 문화를 전적으로 일본에서 배우고 국가체제의 기틀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시종 강조했다. 이치 교수처럼 짐꼬리표·공문서 목간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고대국가 일본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701년 몬무왕 재위기 내려진 다이호 율령(법률) 반포 전까지는 중국 문물과 행정 체계를 이미 독자적으로 수용한 신라의 목간 문화가 당시 행정·공문서 작성·문자 활용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논증했다. 그는 특히 “일본 학계는 신라로부터 문화를 배웠다는 점을 적극 평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아직도 있지만, 기술고문이 일본에 파견됐고, 학승도 신라에 보내 불교를 익혔던 만큼 신라로부터 배우고 있던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단정했다. 이런 관점은 끈을 매는 한일 목간의 형식적 유사성을 비교한 바바 하지메 나라문화재연구소 사료연구실장이나 고대 일본 지방행정 단위와 한국 목간의 연관성을 고찰한 다나카 1후미오 와세다대 교수의 논고에서도 분명하게 제시됐다.

 

회의를 지켜본 국내 연구자들은 “한일 역사학 교류의 일대 사건’이라고 이야기하며 고무된 기색을 보였다. 학회 이사인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레이더 조준 갈등으로 한일 정부 사이에 갈등이 첨예화되는 시점에서 한일 고대사 연구자들이 목간을 화두로 상호이해와 소통의 물꼬를 텄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며 “일국 단위 고대사를 넘어 동아시아 역사의 공동이해를 위한 지식인 연대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편, 두 나라 학회 관계자들은 고대 목간의 문자문화를 공유한 한중일 3국 학자들이 내년 제주에서 공동학술모임을 여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도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목간학회 제공·<한겨레> 자료사진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0256.html#csidx89ffece5398c56bb2caad2e9e4ec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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