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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탁본 국내 첫 입수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중국 ‘지안(集安) 고구려비’의 탁본(拓本)이 처음 입수됐다. 탁본은 돌이나 금속에 새겨져 있는 글씨를 먹을 활용해 원형 그대로 종이에 뜨는 방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실물에 못지않은 가치를 갖는다.
탁본을 확보한 한상봉 한국서예금석문화연구소 소장은 “중국 측 지인으로부터 지난달 초 탁본을 입수했다”고 12일 밝혔다. 지난해 7월 지안 지역에서 출토된 이 비석의 최초 발견자와 그의 동료들이 비석을 중국 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에 넘기기 전에 미리 탁본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새로 찾아낸 ‘정묘년’
지난해 7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발견된 ‘지안고구려비’의 탁본. ① 탁본 판독 결과 새롭게 밝혀진 글씨인 ‘정묘년(丁卯年)’. 중국 문물국이 올해 1월 비석 관련 보고서를 낼 때 이 글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② 새롭게 밝혀진 글씨인 ‘강상태왕(岡上太王)’. 광개토대왕의 시호를 줄여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중국 문물국 보고서엔 나오지 않았다. [사진 한국서예금석문화연구소]
비석은 올 1월 국내에 알려질 땐 ‘제2의 광개토대왕비’로 추정됐다. 내용 일부가 기존 광개토대왕비와 겹치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비보다 앞서 세워졌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비석 자체의 위각(僞刻) 가능성도 제기됐다. [중앙일보 2월 6일자 2면]
탁본이 확보됨으로써 비석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위각 가능성을 제기한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문성재 박사와 한상봉 소장, 서지 전문가 김영복 옥션 단 대표가 탁본 판독에 참여했다. 이들은 중국 측이 당초 내놓은 140개 글자보다 30여 자를 더 알아냈다.
새로 찾은 글자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묘년(丁卯年)’이다. 광개토대왕 재위기에는 정묘년이 없다. 그의 아들 장수왕 시기에는 두 번의 정묘년이 나온다. 427년과 487년이다. 둘 다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414년 이후다. 비석의 건립 시기를 둘러싼 그간의 논란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강상태왕(岡上太王)’이란 글자도 새로 밝혀졌다. 광개토대왕의 시호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강상태왕’은 이를 줄인 말로 보인다. ‘강상’은 사후에 묻힌 지역을 가리킨다.
◆비석 형태·서체 특이
문제는 중국 측이 비석 관련 보고서를 연초 홈페이지에 올릴 때 ‘정묘년’ ‘강상태왕’ 같은 글자를 빠뜨린 점이다. 탁본을 펼치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글자들이다.
문 박사는 “중국의 권위 있는 학자들이 6개월 동안 비문을 분석한 결과를 올 1월 발표하면서 왜 육안으로도 빤히 보이는 ‘정묘년’이나 ‘강상태왕’이란 글자를 찾아내지 못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비석의 형태와 서체상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삼국시대의 비석은 대부분 자연석을 사용했고 이번과 같은 규형비(圭形碑)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김영복 대표는 탁본에 나타난 ‘선성(先聖)’ 같은 글자를 예로 들며 “이렇게 세련된 형태와 필획은 광개토대왕비보다 훨씬 후대의 서체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실물을 보면 그 자리에서 즉각 비석의 진위는 밝혀진다”고 했다.
문 박사도 “중국 측이 비석을 공개하고 양국 학자가 공동 연구하면 관련 의문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 광개토대왕비와 새로 출토된 비석 비교
● 광개토대왕비
-건립 연도: 장수왕 재위기인 414년
-높이: 6m39㎝
-석재: 석회암
-글자 수: 1775자
-형태: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
● 새로 출토된 비석-탁본을 통해 재구성
(비석이 가짜가 아닐 경우)
- 건립 추정 연도: 장수왕 재위기의 정묘년(丁卯年·427년 혹은 487년)
-높이: 1m73㎝
-석재: 화강암
- 글자 수: 중국 문물국 보고서에는 140자만 나와 있지만 탁본 판독 결과 중국과 다르게 30여 자 더 알아냄
- 형태: 깎아놓은 규수비(圭首碑). 중국에선 규형비(圭形碑)라고 부름
● 탁본 글자 판독 결과
- 새로 밝혀진 특이한 점: ‘정묘년’ ‘강상태왕’ 같은 글자가 육안으로도 확인됨.
이 비석의 건립 시기와 주체를 밝힐 수 있는 말들인데 중국 문물국 보고서에는 없었음
- 비석의 위각 가능성: 탁본을 본 전문가들은 비석의 형태와 글씨 모양 등의 문제점 지적
- 실물을 보는 즉시 진위 판단이 가능하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