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신라 왕도였던 慶州 소재의 雁鴨池 발굴로 수십 점이 첫 선을 보인 이래 전국적으로 수 많은 발굴조사가 이어지면서 한국고대사 관련 목간 자료는 꾸준히 추가되었다. 3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 확인된 출토 遺構는 십 수 곳에 이르며 그 총량도 4백 수십 점을 헤아릴 정도다. 이런 추세라면 발견될 목간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리라 예단하여도 좋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안압지 발굴이 이루어진 이후로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정작 그에 대해서 본격적 관심을 기울인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목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의 목간에 쓰여진 글자 수가 적은 탓에 그것이 보여주는 내용 자체가 斷片的인 데다가 判讀 또한 힘들었던 탓도 있다.
90년대에 이르러 목간 자료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赤外線 촬영이나 컴퓨터 활용 등 尖端科學의 기법이 동원되면서 목간의 판독 능력이 향상된 사실을 손꼽을 수 있다. 肉眼으로 판별키 어려웠던 글자까지 읽어낼 수 있게 됨으로써 목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때맞추어 목간의 출토가 늘어난 것도 이를 推動하는 데 한 몫을 했다.
목간에는 많은 정보들이 內藏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코드를 갖고 어떻게 送·受信하느냐에 따라 목간이 담아내는 정보의 양이 결정되낟. 컴퓨터가 지닌 엄청난 기능과 성능이 사용자의 능력여햐에 따라 결정되듯 목간에 내재된 정보도 그와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木材에 글자가 쓰였다는 면에서 목간을 흔히 역사 자료로만 한정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지만 거기에 담겨진 정보 모두를 추출해 내는 데에 歷史學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름지기 판독과 함께 그 의미를 제대로 분석해 내는 데에는 國語學 및 書藝學 文字學 방면을 물론이고 古木材學의 도움까지도 요구된다. 목간이 분자 자료이기에 앞서 전형적인 考古 자료이기도 한 사실도 빠트릴 수 없는 대목이다. 발굴의 과정과 결과는 목간에 담겨진 풍부한 정보를 읽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함이 입증된 바 있다. 거꾸로 목간 또한 발굴 자료의 해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다.
이처럼 목간은 역사학적 자료에 한정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목간의 분석에는 여러 학문 분야가 接木되어야만 비로소 전체 정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목간은 學際的인 연구가 요망되는 새로운 특수 분야에 소속한 연구자료라 하겠다.
한국목간학회 창립 발기인 일동은 목간 자료에 대한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에 인식을 공유하고 공동연구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최근까지 줄기차게 기울여 왔다. 이제 이러한 노력을 한단계 끌어올려 보다 효율적인 木簡 연구 계획의 수립과 이에 따른 공동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韓國木簡學會’의 창립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韓國木簡學會는 木簡을 중심으로 金石文과 여러 出土 文字資料들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함께 수행하여 文字文化의 연구를 통한 歷史象의 복원에 진력할 것이다. 우리는 목간을 매개 고리로 삼아 여러 학문 분야의 接合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목간학을 定立해 가는 데 一助하는 場을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의 목간 연구는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어떤 새로운 조직의 탄생에는 자연스레 잘 커나가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함께 섞여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장차 어떤 모습으로 키워질지는 오직 연구자들의 관심과 자세 如何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비록 인근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유관 자료가 극히 부족한 형편이고 또 출발이 늦었지만 앞서 간 그들의 노력은 곧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자리 잡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가리켜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웃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학문적 업적들을 꾸준히 축적함으로써 한국 목간학은 빠른 시일 내에 이웃과 대등하고도 독자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출범을 선언한다.
2007년 1월 9일
韓國木簡學會 창립발기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