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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백제로 가는 열쇠… 문서·주술 등 한국 목간의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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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백제로 가는 열쇠… 문서·주술 등 한국 목간의 백화점

 

 

 

[사비백제 567년 능사 창건 지상논단] 백제의 숨겨진 역사 ‘능사 목간’
40점 정도 출토… 목간 발굴 본격화
남근형 목간, 일본 길제사 전래 추측
백제 왕실 의약기관 체계화 보여줘
당시 사원경제 연구 중요한 단초로
판도·해석 완성도 제고 숙제로 지적
안내판 제작 등 적극적인 홍보 필요



▲ 의약 관련 종사자에게 급료 내지 식비를 지급한 기록인 '지약아식미기(支藥兒食米記)' 목간

능사 출토 목간의 의미와 활용방안 모색을 위해 각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었다. 윤선태 동국대학교 교수,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목간 연구의 권위자가 참여한 이 자리에서는 능사 목간의 출토맥락과 제작시기, 목간의 해석과 의미, 활용 방향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능사 목간은 백제인의 생활상에 관한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형태 또한 다양하다. 토론자들은 능사 목간이 한국 고대 목간을 대표한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목간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홍보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능사 목간의 출토와 그 맥락

△이병호=남문지를 찾기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수로와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목간은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는데, 부스러기 등을 제외하면 약 40점 정도이다. 능사 발굴은 우리나라 목간 발굴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용현=능사 목간 발굴은 그 다양성으로 인해 한국 고대 목간 연구나 백제사 연구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고, 이후 목간 발굴현장에서 출토 맥락을 중요시하게 되는 마중물이 됐다.

-목간은 언제 제작되었는가?


△이병호=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배수로가 초기 자연배수로보다 늦고, 초기 자연배수로 상한은 나성축조까지 올라간다고 보았다. 이를 근거로 일부 연구자들은 능사 목간을 나성 축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지약아식미기' 목간의 경우 그보다 아래 층위에서 창건기 와당이 출토돼 567년 창건 연대보다 늦다는 것이 확인됐고, 시기적으로 빠른 목간도 출토된 중국제 청자나 벼루 등의 연대로 볼 때 6세기 중엽대로 볼 수 있다.

△윤선태=사찰 중심부가 완공되기 이전의 목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목간 제작 연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찰의 경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용현=대부분의 능사 출토 목간은 명문사리감 연대인 567년 전후 즉 6세기 중엽 전후로 보인다.

-능사 목간의 판독과 그에 관한 쟁점

◆남근형 목간 △이용현=한국 고대목간 전체로 볼 때도 매우 특이한 것이다. 글을 새긴 것도 있고, 글의 방향이 거꾸로 된 것도 있다. 거꾸로 쓴 것이나 립(立)을 세 번이나 쓴 것은 주문과도 같은 전형적인 주술자료다. 남근 자체가 도교 혹 민속적 전통과 맥락을 갖고 있는데, 사찰에서 발견된 것은 이 시기 백제 불교 자체가 도교까지 포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능사 건립이 성왕의 죽음과 밀접한 점, 남근이 다산 등을 의미하는 점으로 보아, 554년 성왕과 3만에 이르는 백제 군대의 죽음으로 침체된 국가 분위기 일신을 위한 주술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선태=연구가 많이 진행됐으나 판독에 관한 이견이 많다. 일본의 도조신 즉 길제사에서 남근 형태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 역시 길제사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민속학적으로는 장승의 기원을 남근에서 찾기도 하는데 길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과 남근형 목간과의 관련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길제사는 백제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높다.

◆'지약아식미기(支藥兒食米記)' 목간

△이용현=백제에서는 보기 드문 막대형 4면 목간으로, 의약 관련 관청의 실무 종사자인 '약아(藥兒)'에게 급료 내지 식비를 지급한 기록이다. 기(記)로 표현된 것은 인근 쌍북리 출토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 목간에도 보이는데, 백제 관가에서 장부를 일컫는 용어로 보인다. 백제 왕실의 의약기관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윤선태=약초를 바깥지역에서 재배하여 도성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했던 '지약아(支藥兒)'에게 식미를 나누어주는 내용이다. 도량형의 구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목간의 실제 크기와 그 용도 등에 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이도학=일본의 용례에 따르면, '지약아(支藥兒)'는 '약아(藥兒)'로 칭하는 것도 좋겠다. '지(支)'자는 동사로 이해할 수 있다.

◆'보희사(寶憙寺)' 목간과 '자기사(子基寺)' 목간 △이용현=사찰간 물품 조달 목간으로 '보희사' 목간은 석가탄신일과 관련이 있다. 당시 왕실 사찰인 능사를 중심으로 사찰 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숙세결업(宿世結業)' 목간

△이병호=백제의 시가를 적은 것으로 알려져 국문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 오사카지역에도 '숙세'의 목간이 출토된 바 있다.

△윤선태=백제인의 이름은 한자식 이름과 토착식 이름의 두종류로 구분되는데 '혜량(慧量)'은 한자식 이름이며, 능사에 거주하던 사람일 것이다.

△이용현=한 때 시가나 이두설을 주장했었으나, '상배백래(上拜白來)', '사(師)'의 해석에 따라 목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도학=기왕의 주장보다는 인연설에 따른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속에서 해석할 여지가 크다.

◆'반면의(斑綿衣)' 목간 △이병호=발굴품 보존처리 과정에서 면제품이 나왔는데, '반면의(斑綿衣)'와 관련시켜 볼 여지가 있다.

△윤선태=사용된 '면(綿)'자는 누에 솜을 말한다. 목화는 '나무 목(木)'변을 사용하여 차이가 있다. 이는 옷 안에다 솜을 집어넣은 것으로 당시 최상층의 의복이었다. 능사 출토 면제품의 경우 바닷길을 통한 동남아시아 교역의 산물일 것이다.

◆'삼귀三貴' 목간 △윤선태·이병호=여러 사람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대불 의식 즉 물에다가 자신의 액을 씻어내는 내용으로 추정된다. 뒷면의 주술부호에 대해 '물 수(水)'자일 가능성도 제시되었다. 행정적인 문서로 보기도 하나, 남근형 목간과 연결하여 본다면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용현=유사례가 없어 이 목간의 성격을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선을 긋고 단을 만들어 백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점은 행정문서 서식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목간이 매우 얇아 종이를 방불케 한다.

◆'중경(仲?)' 목간 △윤선태=최근 '경(?)'자의 판독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밭 전(田)'자도 도정하지 않은 낱알을 뜻하는 '인(?)'자로 보기도 한다. 창고를 뜻하는 '경(?)'자는 고구려에서 비롯된 글자로서, 삼국 간 문자의 교류를 엿볼 수 있다. 사찰 구조의 파악과 관련하여 중요한 목간이다.

△이병호=물품의 이동과 창고의 존재를 시사한다. 당시 승려들의 생활을 복원할 때 반드시 검토해야할 목간으로 능사 서쪽에서 확인된 남북으로 긴 굴립주 건물지가 창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간 부스러기 △이용현=국내에서는 능사의 것이 유일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글자는 몇 자 읽히지 않지만 그것에 대한 향후 연구 심화가 필요하다.

△이병호=삭도나 벼루가 출토된 것을 볼 때 문서행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능사 목간의 특징과 의의


△이용현=6세기 백제의 역사문화 복원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점수는 많지 않지만 홀모양, 홈이 파인 것, 목간 부스러기 등 다양한 형태를 띠며, 문서·시가(노래)·짐꼬리표·주술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목간의 백화점'이라 칭할 수 있다.

△이도학=목간과 삭설이 다량 출토된 것은 문자 사용이 활발했다는 징표다. 사찰은 고급 지식인들의 상주처라는 점에서 목간의 출토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이러한 점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백제 사원경제 연구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백제의 문서화된 행정체계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한국 목간문화의 메카'라 말할 수 있다. 즉 ‘삼국사기’ 근초고왕기에서 '비로소 서기함이 있었다(始有書記)'고 한 기록의 실체를 입증해 주는 물증이 된다.

△이병호=554년 성왕이 죽은 후 567년 목탑에 사리감을 매납하기까지 능사 일대에서 행해진 제의나 행정행위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고대사원의 기능과 운영, 경관 복원을 위한 귀중한 자료다.

△윤선태=백제는 상당히 다양한 용도의 문서로서 목간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7세기 후반부터 목간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그 문화의 출발점은 바로, 백제 목간일 것이다. 신라는 목간의 출토 수량은 많지만 실제로 백제 목간 만큼 다양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능사 목간을 통해 백제의 내면을 더욱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향후 능사 목간 연구의 진전을 위한 제언

△이용현=판독과 해석에 대한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지약아식미기(支藥兒食米記)' 문서 목간 등 일부 목간의 판독과 해석이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러한 작업은 능사의 성격 규명에 열쇠가 될 것이다.

△윤선태=먼저 능사 발굴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능사 건축 이전부터 폐사까지 사역 경관의 변모과정을 이해해야 능사 목간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또한 목간의 판독을 위해 정밀한 선본의 적외선 사진을 제작하여 공개해야 한다.

△이병호=목간의 추가 확인을 위해 도면상의 빈 공백 즉 미발굴지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능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나성과 능산리고분군 사이에 위치하는데, 능사의 추가 등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능사 목간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

△윤선태=현재 능사가 복원되어 있지만, 목간의 역사적 가치가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사역의 건립과정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만들고, 사원의 건립과 운영에 관한 목간 자료를 소개해야 한다.

△이도학=우리나라에서는 부여처럼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는 목간이 출토된 바 없었다. 특히 백제가 해상실크로드를 이용해 곤륜(崑崙)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직접 교류했음을 알려주는 당시의 목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 목간은 능사에 출토된 목화를 원료로 하는 면직물과 부합하는 물증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한국 서사목간 문화의 중심지로서 백제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용현=성왕 동상이나 대형 금동대향로와 같이 대형 목간을 제작하여 홍보하는 방안도 검토해봄직하다.

부여=유광진 기자 k7pen@cctoday.co.kr

◇이 기사는 부여군·(재)백제고도문화재단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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