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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제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닐수도-CBS문화부 김영태기자

작성자
노무현
작성일
2012.02.0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741
내용
'백제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닐수도'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 발견…창건연대·백제금속공예 우수성 입증

[ 2009-01-19 17:08:04 ]
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백제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미륵사지석탑에서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금제사리봉안기는 그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沙乇(宅)積德의 따님으로 …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舍利)를 받들어 맞이했다."(금제사리봉안기). 금제사리봉안기는 백제 왕후가 재물의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 석탑의 건립연도를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시주자인 백제 왕후가 '사택'씨의 딸로 되어 기록되어 있어 그간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화공주 설화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사택' 또는 '사'씨 성은 백제 8대 귀족성 중의 하나이다. 삼국유사의 미륵사지 창건 설화에는 선화공주와 결혼한 후 왕이 된 무왕(600-641년)이 왕비와 더불어 미륵산 사자사에 있는 지명법사를 찾아 가던 중 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연하자 왕비가 무왕에게 절을 세우기를 청해 미륵삼존을 위한 절을 세웠다고 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봉건 소장은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은 '기해년'이 명기되어 미륵사지의 건립연대 뿐 아니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이 입증되었다"며 "미륵사지 창건 시주자가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씨의 딸로 되어 있는 부분은 학문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석탑(국보 제 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과정에서 사리장엄을 발견하고, 사리공에서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은제관식 등 유물 500여점을 수습해 19일 현장에서 공개했다. 금제사리호은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작은 병 형식이며, 내외함의 이중구조로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문 해석]

가만히 생각하건데, 法王(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舍利)를 7번 요잡(遶迊, 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 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沙乇(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만민(萬民)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舍利)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大王陛下)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王后)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

번역 : 김상현(동국대학교 교수)

grea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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