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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학문시험 제도인 '책사' 있었다 (연합뉴스 2011.1.17)

작성자
노무현
작성일
2012.02.0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439
내용
신라에도 중국에서 황제와 신료들이 얼마나 박식한지를 겨룬 게임의 일종인 '책사'(策事)라는 제도가 있었으며 이는 신라에서 학문시험 용으로 활용됐다고 중국 문자학 연구자들이 주장했다.

뤼징(呂靜) 푸단대학 부교수를 비롯한 중국 문자학 연구자 3명은 1975년 경주 안압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목간(木簡) 51점 중 '책사'라는 문구를 묵서(墨書)한 목간 2점이 발견되며, 이를 통해 신라에는 책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산하 동아시아자료학연구회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한 공동성과물인 '죽간(竹簡)ㆍ목간에 담긴 고대 동아시아'(성균관대출판부)에 기고한 '한국 경주 안압지 출토 책사 목간에 관한 시론'이라는 논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책사'라는 말은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2004년 펴낸 '한국의 고대목간'이라는 종합자료조사집에 수록한 목간을 기준으로 할 때 제182번 목간과 제213호 목간에서 각각 확인된다.

이 중 182호 목간에서는 '보응 4년'(寶應四年. 765년)이라는 연대 표기와 함께 '일이삼사오'(壹貳參肆伍)라는 숫자 표기가 보이며, 213호 목간에서는 '책사문사역문금'(策事門思易門金) 정도로 읽을 수 있는 묵서가 확인된다.

중국 연구자들에 따르면 여기서 보이는 책사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에 '예사'(隸事)라는 말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그 의미는 문인들이 모여 담론할 때 전적이나 역사적 전장(典章) 및 고사를 정해진 유형에 따라 엮어내어 그 수가 많은 사람이 이기는 유희의 일종이다.

중국 연구자들은 책사가 보이는 두 목간 중에서도 213호 목간에 쓰여진 '책사문사역문금'(策事門思易門金)이라는 말은 '책사문'과 '사역문'의 빗장(金) 정도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다면 이 목간은 책사문과 사역문의 문을 여는 열쇠에 붙었던 목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이들 목간이 제작된 "신라왕조에는 책사라는 전문화한 부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 연구자는 중국에서는 황제와 신료 및 문인 사이에서 박학(博學)을 겨루던 '예사'와는 달리 신라왕조에서 책사는 귀족 자제들의 학문적 수준을 제고하고 시험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 목간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적미'는 일본에서는 고대 궁성 유적 중 하나인 아스카궁(飛鳥京) 유적 출토 목간에서 조정에 바치는 헌상물 중 하나로 발견됐는가 하면, 다른 궁성 유적들인 후지와라궁(藤原京)이나 헤이조궁(平城京) 등지의 목간에서도 보인다. 나아가 일본 고대황실 보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이 소장한 문서들에도 지방에서 중앙조정에 적미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이런 일본측 발굴성과를 비교할 때, 이번에 부여에서 출토된 목간에서 보이는 '적미' 또한 지방에서 바친 공물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아울러 다른 목간에서는 백제 당시 수도의 행정구역을 방향에 따라 5개 구역으로 나눈 것 중 '전부'(前部), '중부'(中部), '하부'(下部)'와 같은 문자가 발견돼 백제 행정통치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다량의 목제유물과 자기류, 토기류, 금속류, 석기류, 초본류, 동식물유체류 등의 백제시대 유물도 확인됐다고 보존센터는 말했다.

이번에 확인된 일부 유적에서는 기생충이 검출돼 화장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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